오마이뉴스 by Seungsoo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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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라흐마니노프 에튀드에 '떡실신'하다

[2030에게 희망을 묻다⑧] 천재 피아니스트 임현정
10.02.12 15:54 ㅣ최종 업데이트 10.02.12 15:54 임승수 (reltih)

 

'내가 스위스 취리히에 사는 사람을 인터뷰할 줄이야.'

  

물론 피아니스트 임현정(23)을 인터뷰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 현지로 날아간 것은 아니다. 그럴 돈도 없고 말이다. 정말 어렵게 연락처를 알아내서 전화 연결을 한 후 본인 여부만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인터넷 메신저의 음성대화 기능을 통해서 장시간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국내에도 젊은 피아니스트가 많을 텐데, 뭘 그렇게 번거롭게 스위스에 사는 사람을 인터뷰 하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필자는 김선욱, 손열음, 임동혁 등 대한민국의 유명한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연주회에서 직접 들어보았으며, 김선욱씨와는 월간 <말>의 지면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웬만한 연주에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히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 접한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연주 동영상은 필자를 충격의 도가니탕에 빠뜨렸다. 바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한 아래의 동영상이다. 꼭 영상을 봐야 필자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하~! 하~! 어이없는 웃음만 계속 나왔다. 영상을 2배속으로 돌린 것도 아니고 말이다. 말도 안 되는 테크닉의 연주가 눈앞에 막상 펼쳐지니 필자의 마음속에 갑자기 못된 심보가 생긴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지도 않는 필자가 어떻게든 이 영상 속의 여인을 깎아내리고 싶어진 것이다. 아마도 직관적으로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불편한 사실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뭐, 테크닉과 음악성은 별개니까.'

 

그래도 어릴 적에 나름대로 더듬더듬 쇼팽 에튀드도 연주하며 적어도 들을 귀는 있다고 내심 자부하던 필자는, 생판 알지도 못했던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약점을 찾기 위해 유튜브 검색창에 'hyun-jung lim'을 입력하면서 동영상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듣게 된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에 필자는 그야말로 '떡실신' 상태가 되었다. 바로 아래의 영상이다.

 

 

그렇구나.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었구나. 불편한 사실을 확인한 필자의 머릿속에는 다른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뛰어난 테크닉과 음악성을 겸비한 한국인 피아니스트가 왜 우리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을까? 찬찬히 인터넷 공간 거닐어 살펴보니 그런 의문은 필자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유튜브 동영상을 본 외국인들도 도대체 임현정이라는 피아니스트가 누구인지 무척이나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사하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화를 시작했나 보다. 의외의 첫 인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임현정씨에게 헤드셋 마이크를 통해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댔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조금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아래의 박스 안 내용은 그녀의 간단한 이력이다.

 

  
청중들에 둘러싸인 피아니스트 임현정
ⓒ 임현정
임현정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누구?

만 3살에 피아노 시작

12세에 프랑스로 유학

콤피엔느 콘서바토리의 피아노, 이론부문을 최연소로 조기 수석 졸업

프랑스 노르망디 전국 부문 음악 디플롬을 만 15살에 최연소로 취득

루앙 국립 음악원 피아노 및 실내악 부문 최고연주자 과정 수석, 최연소 취득

프랑스 France 3 Normandie 뉴스방송에 천재 피아니스트로 출연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에 최연소 입학

3년 뒤인 만 19세에 피아노 부문을 최연소로 조기, 수석 졸업

한국인 최초로 퀸 엘리자베스 국립음악원의 최고 연주자 과정 합격 및

벨기에 국가 장학생으로 선발

최근 그녀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피아노 독주회를 열고 있었다. 지난 1월 25일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악축제인 'Serate Musicali'에 초청을 받아 밀라노에서 연주회를 했다.

 

4일 뒤인 1월 29일에는 같은 시리즈의 일환으로 세계적인 바이올린의 거장 기돈 크레머가 연주를 했으니, 페스티벌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스위스의 AMG Springboard Concert Series of the Konzertgesellschaft의 '떠오르는 스타(Rising Stars)' 시즌에 초청돼서 공연을 했고, 독일 Bayreuth Osterfestival의 초청 리사이틀, 이탈리아 Festival Europeen de la Musique Classique pour la Jeunesse en Italie 초청 리사이틀, 나폴리 A.C.I.S.A.M. 주최 초청 리사이틀,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페스티발 초청연주, 프랑스 Moulin d'Ande 초청 리사이틀, 벨기에 겐트 Festival De Rode Pompe 초청 리사이틀, Festival Kamermuziek in Houtland 초청 리사이틀 등 정신없이 유럽을 누비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이었지만, 뛰어난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수많은 연주회에 초청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세계적인 콩쿠르, 예를 들어서 쇼팽 콩쿠르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입상자라는 타이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임현정씨는 다음과 같이 잘라 말할 정도로 콩쿠르에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피카소와 마그리트, 아니면  반 고흐와 고갱 중에 누가 더 뛰어난지 비교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1등, 2등을 주어야 할까요? 로마상을 세 번이나 거절당한 라벨이 실력 없는 작곡가라서 떨어졌을까요? 작곡가 벨라 바르토크는 쇼팽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거절하면서 '음악가가 경쟁을 하는 콩쿠르에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경쟁이란 것은 경마에서나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예술과 경쟁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콩쿠르도 나가봤습니다. 하지만 2007년에 받은 Concours International de Piano de FLAME의 대상을 마지막으로, 저는 경쟁을 앞세워 음악도들을 모으는 '비즈니스'에는 기여를 안 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그녀는 남들이 하지 않는 도발적인 도전으로 승부를 걸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쇼팽 에튀드와 라흐마니노프 에튀드 전곡을 한 번에 연주하는 독주회이다. 서양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미친' 생각인지 잘 알 것이다. 극악무도한 난이도로 악명 높은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 전곡을 하루에 연주한다니!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마라톤을 하루에 두 코스 뛰는 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악 축제인 'Serate Musicali' 주최 측에 이러한 기획을 제출했다. 당연히 주최 측에서는 이 제안을 한 사람이 미쳤거나, 아니면 진짜 '천재'이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리고 그녀의 연주 동영상을 본 'Serate Musicali' 측은 흔쾌히 그녀를 초청했다.

 

그녀의 유럽 연주회들에 대해 언론에서는 대단한 호평들이 이어졌다. 연주를 하면서 직접 느낀 청중들의 반응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번 시즌에 연주하면서 물어봤어요. 제 연주가 끝난 후 관중이 항상 쉽게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데, 원래 그런 분위기인지 말이에요. 대답은 그랬지요, 네덜란드에서는 일어나서 박수치는 것이 전통이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 특히 스위스나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그것이 보기가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하더군요."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독주회 리뷰를 다룬 2009년 8월 15일 프랑스 신문 "Independant"
ⓒ Independant
임현정

 

 

 

 

2009년 8월 15일 프랑스 신문  "Indépendant"에서 났던 음악평론 기사

8월 10일에  Lieu d'Art Contemoporain 에서 열린 독주회는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젊은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자유자재로 악기를 컨트롤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그 용맹한 테크닉조차 잊어버리게 할 만큼 그녀의 희귀한 천부적 재능은 말 그대로 관중을 복종시켰다.

 

아직 나이 22살의 피아니스트가 훌륭하게 연주한 쇼팽 에튀드 전곡과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타블로 전곡은, 앙콜곡 4개로 이어져 3시간이 넘도록 계속됐다. 그 후에도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연주하여 관중들을 희열에 넘치게 하였다. 이 역사적인 저녁은 2010년도에 출시될 DVD 녹화를 위해 열렸는데, 나는 음악 애호가들에게 그것이 출판될 날을 미리 기대하라고 알려주고 싶다.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없던 힘도 솟아난다는 임현정씨. 오히려 연습 때보다도 실전에서 더 좋은 연주가 나온단다. 그런 체질 때문인지 아무런 관객도 없이 수많은 편집과 조작이 행해지는 스튜디오 녹음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에 유럽과 한국에서 동시에 출시 예정인 DVD도 실황 연주를 직접 영상에 담았다. 이후에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을 완주하는 독주회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음악을 하면서 세상에 보탬이 되는, 잘 쓰이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 CADETEKI(Centre d'Appui au DEveloppement du TErritoire de KImvula)를 지원하는 독주회를 하고 있는데요, CADETEKI는 학교나 병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Kimvula에서 살고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자선단체입니다. 앞으로 제 음악이 더 많은 좋은 일에 쓰여 졌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스위스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임현정 독주회 포스터
ⓒ 임현정
임현정

 

아직 한국에서의 연주회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당연히 꼭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초등학교 때에 장구를 배우고 사물놀이를 많이 연주했었다는 임현정씨. 그래서인지 파리 국립 음악원 시절에 생활한복을 입고 등교를 하기도 하고, 프랑스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국악음악 CD를 들려주곤 했단다.

 

2002년 노르망디 전국 부문 음악 디플롬(Diplôme d'Etudes Musicales Complètes de la Normandie)을 준비할 때 '서양음악에 존재하는 동양 음악 (L'Orient dans la musique Occidentale)'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쓸 정도로 자신이 태어난 조국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프랑스에 있을 때 김양희 영사 할아버지가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꼭 얘기해주세요."

 

한국의 언론과는 처음 인터뷰하는 것이라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익다. 어차피 송곳은 주머니 안에 있더라도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결국 누군가는 송곳이 뚫고 나왔다고 알릴 수밖에 없다. 단지 필자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장 먼저 송곳을 발견해서 알렸다는 것. 언젠가는 분명히 열릴 그녀의 귀국 연주회가 벌써부터 무척이나 기대된다.

 

Publié dans Korean Inter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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